《안나》는 쿠팡플레이에서 2022년 공개된 6부작 드라마로, 정체성을 속이며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 스릴러이자 사회 드라마다. 배수지, 김준한, 정은채, 박예영 등 탄탄한 배우진이 출연하며, "나는 한 번도 내가 되고 싶었던 삶을 산 적이 없다"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작은 거짓말 하나가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자격지심, 사회적 계급 구조의 억압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타인의 삶을 살게 된 여자 – ‘안나’ 줄거리 요약
《안나》는 주인공 유미가 아주 작은 거짓말을 시작으로 자신이 아닌 '안나'라는 타인의 정체성을 살아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서사 구조상 범죄 드라마, 정체성 스릴러, 심리극의 요소를 모두 담고 있지만, 그 본질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자격지심과 욕망,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구조적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극 중 유미(배수지 분)는 평범한 환경에서 자란 소녀로, 지적 호기심이 많고 자기 삶을 바꿔보고 싶은 갈망을 지닌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과 한계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얻지 못하고, 대학 조교로 일하던 중 우연히 부유한 상류층 여성 '안나'로 오해받게 된다. 이 작은 오해를 바로잡지 못하고, 아니 어쩌면 바로잡고 싶지 않았던 유미는 결국 안나라는 인물을 '살기' 시작한다. 안나의 정체로 살아가는 동안 유미는 상류층 세계에 들어가며 결혼, 커리어, 사회적 지위를 하나씩 얻는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허위에 기반하고 있으며, 언제든 들통날 수 있다는 위기감과 자기 정체성 상실의 공포 속에서 그녀는 점점 내면이 무너져 간다. 그녀의 삶은 철저히 구축된 ‘가짜’지만, 주변 인물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무심히 지나친다. 드라마는 현재의 안나의 삶과 과거의 유미였던 시절을 교차 편집하며 서사를 구성하고, 유미가 왜 거짓된 삶을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심리적으로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설계한다. 특히 그녀의 거짓말은 단순한 사기극이 아니라, 존재를 부정당한 개인이 사회적 계급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처럼 묘사되며, 시청자에게 도덕적 판단보다는 깊은 연민과 공감을 유도한다. 이야기는 중반 이후부터 유미가 쌓아 올린 세계가 점차 무너져 내리는 과정을 그리며, 불안감과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남편 지훈의 의심, 과거 인연의 재등장, 자아 분열에 가까운 내적 충돌 등이 더해지며, 유미는 스스로 만든 ‘안나’라는 인물에 갇혀 점점 파국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회에서는 그간 쌓여온 감정과 비밀이 폭발하며, 그녀의 선택과 파멸이 극적으로 그려진다. 《안나》는 단순히 스릴러나 사기극이 아닌, 현대 사회 속 개인의 존재 이유, 정체성, 그리고 ‘성공’이라는 기준이 만들어낸 비극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분석 – 거짓과 진실 사이의 인간 군상
《안나》 속 인물들은 모두 유미(안나)의 거짓된 삶을 둘러싼 현실적이고 상징적인 존재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인물은 유미의 자아 형성, 붕괴, 그리고 그 끝의 파국을 구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인물 간의 관계는 도덕과 욕망, 계급과 감정이 교차하는 복합적 구조를 띠고 있다. 유미/안나(배수지 분)는 드라마의 중심축으로, 자격지심과 박탈감 속에서 타인의 삶을 살게 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본래 유능하고 지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며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강한 결핍감을 느낀다. 이런 결핍은 결국 거짓된 삶으로 나아가게 되는 심리적 동기가 되며, 그녀는 '안나'로 살아가며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처음에는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점점 그것에 익숙해지고, 끝내는 모든 것을 잃을 각오까지 하게 된다는 점이다. 최지훈(김준한 분)은 유미의 남편이자 유망한 스타트업 대표로, 겉으로는 세련되고 성공한 남성이지만, 실상은 유미를 자신의 소유물처럼 여기고 통제하려는 강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 그는 유미의 정체성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서 점점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이는 유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억압이 된다. 지훈은 상류층 남성의 이중성과 권력 지향적 사고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이현주(정은채 분)는 유미의 과거 인연이자, 상류층 여성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녀는 유미에게 처음 '안나'라는 오해의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며,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미의 열등감을 자극하는 존재로 작용한다. 겉으로는 우아하고 자애로운 척하지만, 내면에는 위선과 자기만족이 가득한 인물로, 유미와의 관계는 계급적 긴장과 여성 간 경쟁의 축소판처럼 묘사된다. 지원(박예영 분)은 유미의 유일한 친구이자, 그녀의 과거와 진실을 알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유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짓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충고하지만, 결국 유미의 선택을 바꿀 수는 없다. 지원은 양심과 현실 사이에서 유미에게 마지막까지 인간적 연대를 시도하는 존재이며, 유미의 죄책감과 혼란을 증폭시키는 거울 역할을 한다. 이 외에도 드라마에는 안나의 이중생활을 눈치채는 주변 인물들, 유미의 어린 시절을 구성하는 부모와 스승 등의 인물이 등장하며, 이들은 모두 유미라는 인물이 왜 ‘안나’로 살아야 했는지 그 근본적인 배경을 조명하는 데 기여한다. 특히 작품은 모든 인물에게 절대적인 선악을 부여하지 않고, 각자 나름의 욕망과 상처, 선택의 논리를 가진 인간으로 묘사한다. 그 점이 작품의 현실성과 몰입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작품 총평 – 정체성, 계급, 그리고 선택의 서스펜스
《안나》는 단순한 정체성 스릴러를 넘어, 사회 구조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드는 심리 드라마이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은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통해 개인의 욕망과 불안, 그리고 현대 사회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에게 강요하는 허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아낸다.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은 ‘거짓말을 한 사람이 무조건 나쁘다’는 단순한 도덕적 이분법을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유미가 왜 거짓된 삶을 살게 되었는지, 어떤 사회적 배경과 감정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를 차분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유미의 선택을 단죄하기보다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유미는 악인이 아니라,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선택한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연출 면에서는 절제된 톤과 속도감이 인상적이다. 불필요한 설명이나 과도한 감정 묘사 없이, 주인공의 내면을 시선과 공간, 침묵을 통해 보여주는 방식은 시청자에게 긴장과 몰입을 동시에 제공한다. 특히 화면 구성과 음악 사용이 세련되며, 배수지의 섬세한 감정 연기는 작품 전체의 리얼리티를 완성시킨다. 작품이 제기하는 계급 문제, 여성의 자아 정체성, 외적 성공에 대한 강박은 오늘날 한국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여성 주인공이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며, 사회 구조에 저항하고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을 담은 점에서 페미니즘적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편집 논란(감독판 vs 오리지널 논란), 완결성 부족, 일부 플롯의 생략은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특히 후반부 결말의 급박한 전개는 시청자에게 약간의 허탈함을 줄 수 있으며, 정서적 여운이 덜할 수 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강한 문제의식과 감정적 깊이를 동시에 지닌 작품으로, 넷플릭스나 티빙 등 주요 플랫폼이 아닌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타며 많은 시청자에게 회자되었다. 이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이야기와 연출,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이 빚어낸 결과다. 결론적으로, 《안나》는 "거짓된 삶을 살게 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우리가 과연 얼마나 진짜 ‘나’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다. 현대 사회의 단면을 정밀하게 포착하고, 그 안의 인물들을 통해 거짓과 진실, 성공과 실패, 삶과 정체성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낸 수작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