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모》는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쌍둥이로 태어난 남매 중 여동생이 오라버니의 죽음을 대신해 세자, 더 나아가 왕의 자리에 오르며 벌어지는 궁중 로맨스 사극이다. 역사적으로 여성의 왕위 계승은 불가능했던 조선이라는 배경에서 여성 왕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정치와 사랑, 신분과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린다. 로맨스를 중심에 두면서도, 조선의 유교적 질서와 성별 고정관념을 비판적으로 해석해 낸 작품이다.
여인이 왕이 되어야 했던 이유, ‘연모’ 줄거리 요약
KBS2에서 2021년 방송된 드라마 《연모》는 같은 이름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퓨전 사극 로맨스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제 역사와는 무관한 가상의 설정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여자 세자, 여자 왕’이라는 파격적인 전제가 극의 중심에 놓이며, 전통적인 사극의 틀을 넘어 새로운 서사를 창조해 냈다. 드라마의 시작은 조선 왕실에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는 장면으로 열린다. 당시 조선에서는 쌍둥이를 불길한 존재로 여겼기에, 여아는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궁녀의 도움으로 여아는 살아남아 외부에서 평범한 삶을 살게 되고, 남자 형제는 왕세자의 자리를 이어받게 된다. 그러나 형제가 어린 나이에 비명횡사하게 되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아 ‘이휘’는 형의 죽음을 숨기고 그의 삶을 이어받아 궁궐로 돌아오게 된다. 이휘(박은빈 분)는 세자, 그리고 후에 왕으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녀는 스스로의 여성성을 감추고, 남성으로서 정치적 수련을 이어나가며 점차 조선의 왕위에 오르게 된다. 그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이며, 매 순간 자신의 존재가 드러날 위기를 견뎌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휘는 세자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온 정지운(로운 분)과 재회하게 되는데, 그는 궁중의 새로운 사관으로 부임하며 세자의 측근이 된다. 정지운은 과거 이휘가 여인으로 살아가던 시절 인연을 맺었던 인물로, 처음에는 세자 이휘가 자신이 알고 있던 인물과 동일 인물임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차 기억을 되살리고, 이휘의 정체에 대한 의심과 혼란을 거쳐 결국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휘 역시 지운을 향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며 갈등에 빠진다. 그러나 이들의 사랑은 단순한 신분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왕은 남성만이 되어야 하고, 여인은 정치를 할 수 없다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린 구조 안에서, 이휘의 존재는 그 자체로 금기이자 파멸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에 따라 이휘는 정체가 발각될 경우 본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정치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 드라마 후반부로 갈수록 이휘의 정체가 점차 밝혀지며, 왕실 내부의 권력 구조 또한 요동친다. 세자 시절부터 그녀를 눈엣가시로 여겼던 대왕대비, 권신 산림파와 훈구파의 대립, 그녀의 즉위에 위협을 느끼는 외척 가문 등 여러 정치적 압박 속에서 이휘는 점차 왕으로서의 강인함을 갖추게 된다. 동시에 정지운과의 사랑은 현실적인 갈등과 마주하며, 궁극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이휘의 선택으로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결국 이휘는 왕으로서 조선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지만, 자신의 정체를 세상에 밝히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드라마는 열린 결말을 통해 이휘의 삶과 정지운과의 관계를 끝까지 응시하게 하며,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조선이라는 성별 권력 체계 속에서 여성이 지닌 존재 의미를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작품으로 마무리된다.
등장인물 분석 – 정체성과 사랑, 권력의 교차점
《연모》의 서사는 단순히 성별 반전을 넘어, 각 인물들이 시대 속에서 어떤 존재로 기능하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한다. 주인공뿐 아니라 주변 인물들 또한 당대 조선이라는 공간 속에서 나름의 신념과 정체성을 지니며 서사에 기여한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 변화는 드라마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정치 드라마로 확장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이휘(박은빈 분)는 본래 죽을 운명이었지만 살아남아 남동생의 삶을 이어받게 되는 인물로, 극 전반을 이끄는 중심축이다. 여성으로 태어났으나, 남성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그녀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성장한다. 처음에는 여성성을 숨기기 급급했던 그녀는 점차 자신이 처한 구조를 냉정히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강인함과 리더십을 갖추게 된다. 이휘의 캐릭터는 단순한 ‘여성 왕’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고뇌, 사랑, 책임감을 모두 품은 입체적인 인물로 구현되었다. 정지운(로운 분)은 어릴 적 인연을 바탕으로 이휘와 재회하게 되는 남자 주인공으로, 의관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한 삶을 살지만,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궁중 사관으로 들어온다. 그는 세자와의 관계를 통해 혼란과 정체성의 위기를 겪지만, 결국 이휘를 ‘여자’나 ‘왕’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사람’으로 바라보게 된다. 정지운의 사랑은 소유가 아닌 이해이며, 이는 기존 사극 로맨스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성숙한 감정선으로 평가받는다. 김가온(최병찬 분)은 이휘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호위무사로,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충성과 우정을 모두 지닌 인물로, 왕이지만 여성인 이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다. 그의 존재는 이휘가 누구보다 외로운 자리에 서 있음을 상기시키며, 동시에 왕을 인간적으로 지탱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노하경(정채연 분)은 조정의 유력 가문 출신으로, 왕비 간택을 통해 왕실로 들어오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정치적 결혼의 도구였으나, 점차 이휘의 비밀을 눈치채며 복잡한 감정을 겪는다. 그녀는 권력과 감정 사이에서 현실을 직시하고, 끝내 스스로의 자리를 선택한다. 하경의 캐릭터는 여성 간의 질투나 대결 구도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 속에서 여성이 겪는 억압과 구조적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외에도 대왕대비, 좌의정, 사헌부 관원, 외척 가문 등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등장하며, 이휘의 정체가 밝혀질 위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들의 관계와 갈등은 드라마가 단순한 로맨스를 넘어 정교한 정치극의 구조를 갖추는 데 기여한다. 《연모》의 인물 구성은 단순한 주인공 중심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과 신념을 지닌 인물들이 상호작용하며 전체 서사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특히 남성 중심의 권력 구조 속에서 여성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고립, 선택과 희생은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총평 – 전통 사극의 틀을 깨는 섬세한 서사와 상징
《연모》는 전통적인 사극 로맨스의 외형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상당히 진보적인 시선을 담아낸 작품이다. '여성 왕'이라는 가상의 전제를 통해 조선 시대의 성별 질서, 신분 구조, 권력 체계 등을 재조명하며, 그 안에서 여성 개인이 어떻게 성장하고 사랑하고 결정하는지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드라마의 가장 큰 장점은 박은빈의 연기력이다. 남장 여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이휘의 감정을 결코 과장되지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표현해 낸 그녀의 연기는 극 전반에 걸쳐 몰입도를 높였다. 로운 또한 감정선을 섬세하게 구축하며, 이상적인 남성 캐릭터가 아닌 현실적인 남성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배우의 호흡은 극의 중심이 되는 로맨스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또한, 드라마는 궁중의 미장센, 의상, 색감 등에서도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여성 왕이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을 시청자에게 납득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현실감 있는 연출과 세밀한 고증, 그리고 철저한 감정 설계가 있었다. OST 또한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증폭시켜 극의 흐름에 감성적 깊이를 더했다. 무엇보다 《연모》는 질문을 던지는 드라마이다. “왜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는가?”, “사랑은 신분을 넘을 수 있는가?”, “정체성과 권력은 양립 가능한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은, 시청자에게 단순한 서사 이상의 사고를 유도한다. 비록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더라도, 그 설정이 상징하는 바는 매우 현실적이다. 결론적으로 《연모》는 시대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면서도, 현대적 주제의식을 정교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아름답지만 아픈 이야기, 비현실적이지만 절절한 감정, 이상적이지만 철학적인 메시지가 조화를 이루며, 오랜 시간 회자될 만한 작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