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OCN에서 방영된 드라마 《타인은 지옥이다》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심리 스릴러물로, 서울 고시원에 입주한 청년이 겪는 낯선 공포와 인간 내면의 어두움을 강렬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임시완, 이동욱 주연의 몰입도 높은 연기와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기존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공포 미학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본문에서는 이 드라마의 줄거리, 등장인물, 그리고 심리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한다.
고시원의 낯선 이웃들, 인간 공포의 시작
《타인은 지옥이다》는 서울로 상경한 청년 윤종우(임시완)가 생계 문제로 저렴한 고시원에 입주하면서 시작된다. 겉보기에는 흔한 청춘의 고단한 삶이지만, 고시원 ‘에덴 고시원’에는 일상과는 다른 이질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종우는 처음부터 불친절한 주인, 기괴한 입주민들, 설명하기 힘든 불쾌감에 휘말린다. 고시원은 종우가 바라는 ‘조용한 공간’이 아니라, 점점 정신을 병들게 하는 지옥과도 같은 공간으로 변모한다. 특히 반쯤 웃고 있는 정체불명의 치과의사 서문조(이동욱)는 종우에게 묘한 친절과 불쾌감을 동시에 주며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우는 주변 이웃들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불안감을 느끼고,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고시원 내 살인 사건, 어딘가 망가져 있는 입주민들의 기이한 행태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종우의 정신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 간다.
이 드라마는 단순한 공포물이나 미스터리가 아니다. 현대 사회의 고립된 인간 군상, 사회적 약자의 불안, 익명성 속에 감춰진 폭력성을 공간과 인물, 심리 묘사로 풀어낸다. 종우는 고시원이라는 폐쇄적 공간에 갇히며, 타인에게 경계심과 적대감을 품게 되고 마침내 자신조차도 인간성을 잃어가는 과정을 겪는다. 서문조는 이러한 종우의 불안과 분노를 자극하며, 그를 인간의 경계 밖으로 몰아가는 조력자이자 파괴자이다. 종우는 고시원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그를 둘러싼 인간 군상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야기의 후반부는 과연 종우가 이 고시원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그 과정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에 대한 긴장감 넘치는 심리 게임으로 전개된다. 결국 《타인은 지옥이다》는 단순한 장르물 이상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타인에게 무관심한가?’, ‘지옥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일 수 있지 않은가?’라는 철학적인 메시지를 남기며 마무리된다.
심리적 경계를 흐리는 괴물들
《타인은 지옥이다》는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상징성을 지닌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다. 이들은 단순한 괴한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인격화한 존재들이다.
윤종우 (임시완)은 서울에 상경한 청년으로, 글을 쓰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경제적 한계와 인간관계의 고립 속에서 서서히 심리적으로 피폐해진다. 종우는 초반에는 평범하고 순응적인 인물이지만, 점점 자신의 분노와 공포를 감당하지 못하고 폭력성과 냉소를 내면에 키워간다.
서문조 (이동욱)는 치과의사라는 가면을 쓴 잔혹한 살인마다. 그는 온화한 얼굴과 미소 뒤에 끔찍한 폭력성과 왜곡된 세계관을 숨기고 있다. 그는 윤종우에게 접근하여 그의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내면의 어두움을 끌어내려한다.
유기혁 (이현욱), 홍남복 (이중옥), 병식 (박종환) 등 고시원 입주자들은 모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거나 병리적인 상태에 있는 인물들로, 종우를 끊임없이 불안하게 만들며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다.
특히 유기혁과 병식은 서문조와 함께 고시원 내 범죄에 가담하는 인물들로, 악의에 대한 무감각과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소정화 (김지은)은 종우의 여자친구로, 종우의 변화와 고시원 문제에 점점 의심을 품는다. 그녀는 유일하게 종우의 정신을 붙잡아주는 존재지만, 그의 내면이 무너지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한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현실과는 단절된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이 만들어내는 고시원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사회적 무의식'의 표현으로 작용한다.
인간 심연의 끝을 보여준 한국형 심리 스릴러
《타인은 지옥이다》는 단순한 공포물이나 살인마를 소재로 한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공포’가 될 수 있음을 상징적이고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원작 웹툰의 밀도 높은 심리를 드라마 형식으로 각색하며, 특유의 불쾌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영상미와 음악, 배우들의 연기로 완벽하게 살려냈다. 특히 이동욱의 파격적인 악역 연기는 그의 배우 인생에서 전환점이 되었으며, 많은 시청자들에게 섬뜩한 인상을 남겼다. 고시원이라는 폐쇄적 공간은 현대 사회의 소외와 단절을 상징하며,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현대인의 불안, 무력감, 냉소를 투영한다. 종우는 결국 ‘타인’에게 상처받고, ‘자신’조차 타인이 되는 과정을 겪으며 인간이라는 존재의 불완전성과 감정의 경계가 얼마나 불안정했는지를 보여준다.
연출은 과하지 않되 지속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며, 잔혹한 장면보다 심리적 압박감을 강조한다. 이러한 서사는 단순한 장르물 소비를 넘어 시청자에게 ‘나 또한 누군가의 타인일 수 있다’는 철학적 질문을 남긴다. 《타인은 지옥이다》는 한국 드라마에서 드물게 심리와 스릴러를 결합해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이며, 웹툰 원작 드라마의 성공적인 예로도 손꼽힌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지옥은 누구입니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단지 드라마 안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서도 계속될 것이다.